옛날 사드에 대한 영화를 봤었느데.제목은 기억을;;..머였더라..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한텐 영향을 많이 줬다고 볼수있는.
저도 시간 나면 규방 철학을 읽어 봐야게씁니다...
고등 학교 이후 독서는 맥스 관련 서적이랑 플로그인 책 뿐이 -.-;;;
사드백작은 새디스트란 말의 어원 이 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관심이 많았던 내용들인데,(내 주위에서 보긴 변태일지도);..주변에 이런 내용의 주제를 나눌 사람이 전무해서;
이글을 봤을때 왠지 기뻣습니다.;;;어쩌다..이쪽 방면으로 오니 접할수 없는 학문들;.
에로틱시즘 , 인간 본성과 존재에 대한 물음, 사람은 무엇을 탐하는가.
도덕과 윤리는 과연 옳은가 혹은 본성과 대치되진 않느가.난 자유로운가;.
또 인간은 어떻게 접근 해야 하는가..;;쾌락과 고통의 대한 학문들
혼자서 생각 해야하고 혼자서 판단해야 하고, 몇몇 단편적인 영상과 글을 통해서 접할수 밖에 없어서,
계속 혼자 생각 하고 , 틀을 깨고, 혼란해 하고 , 다시 정립하고 해서..다시 깨고.
왠지 계속 외롭다고 생각 했느데..(나만 이상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 했음ㅜㅜ.)
근데 이런것을 저 너머에선 학문으로써 토론되고 , 자기 생각을 나누고, 애기 나눌수있는곳이 있었다니..
당연한 것이었느데...왠지 조금 부러웠네요..;;
..
ㅎㅎ 웬지 투정이 되어버린.....
이 다섯 가지의 책 혹은 영화는 모두 하나로 통하는 데 그것은 성性과 사드 백작이다. 이 작품들은 공통되게 가학과 피학, 살인, 도둑질, 변태성욕, 동성애, 근친, 反종교, 反법 등을 주된 소재이자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쾌락으로 통한다. 이 모든 것들은 오로지 쾌락을 위해 존재한다. 사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기독교(혹은 기독교적 질서와 교리)와 법과 사회 통념적 도덕은 이 쾌락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욕하고 탄압하며 그저 “교배”로써의 인간기능만을 강조하며 폭력의 기재로 작용한다.
사드는 벌써 2세기 전에 그러한 기독교적인 것과 도덕과 윤리의 허구와 거짓을 욕하며 성적 해방을 외쳤다. 어떻게 200년도 전에 산 사람이 지금의 현대인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선 사드의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내가 특히나 즐겁게 감상한 것이 『규방철학』인데 그는 이 책을 통해서는 자신의 철학과 이념, 주장을 자세히 설명해놓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종교를 가져서는 안 되며 파괴로서의 자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쾌락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할 수 있으며 쾌락을 추구하는 어떤 형식도 문제가 될 수 없다. 인간 -특히 여성은 쾌락만을 위해 태어났고 그렇기에 여성은 창녀가 되어야 하고 사랑으로 애태워서는 안 되고 임신을 해서도 안 된다. 또한 그 쾌락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사드는 인간 성악설을 주장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존재이며, 이러한 惡 역시 자연이 부여한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필요하다면 가식을 부려도 되고 남을 속여도 되고 심지어 죽이는 것 까지도 죄가 아니다. 그 예로 역사적으로 한 지도자가 수많은 인간들을 죽였음에도 벌 받지 아니하였는데 약하고 불행한 개인들인 우리가 우리의 복수 혹은 우리의 변덕에 따라 단 한명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냐고 주장한다.
규방철학을 절반정도 읽었을 때만해도 이 책이 도대체 무얼 말하고자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나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그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해졌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짜릿짜릿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카타르시스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마치 혼자 몰래 포르노동영상을 다운받아 훔쳐보면서 느끼는 긴장감이랄까 즐거움이랄까.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대가며 부정해 왔던 생각들을, 무려 타당한 이유까지 대 가며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아아, 내 속에 있던 악마가 인정받은 것 같은 기쁨과 즐거움! 그 순간 사드가 내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고 나는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는 인간이 도덕과 윤리라는 가면아래 감춰두었던 잔인성, 악마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옹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거지, 이 과잉의 존재들은 마치 기생하는 가지들, 고작해야 몸통에 붙어서 살아가다가 언제나 고사하는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내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이냐! 내가 가진 불행이 충분치가 않아서 내가 모를 불행에까지 내가 상심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로 범죄적인 행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로 덕스럽다고 부를 수 있는 행동도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아! 인간이라는 종족이 지구상에서 망하든 사라지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해?”
나는 태어나서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작가는 처음 봤고 또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감복해보긴 처음이다. 그래, 악이 왜 나쁜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그 惡이란건 자연이 내게 태어날 때부터 준 것이고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발상한 것 뿐이다. 난 나쁘지 않은 것이다! (...라니)
하지만 또 그냥 넘어가기에 찝찝한 것이 사드의 그런 주장은 너무나도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부르짖는 자연 상태, 동물과 같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계는 결국 강한 자의 이데올로기다. 소돔 120일에서처럼 돈 많고 권력을 잡고 있는 놈들이야 몇 십 명 죽여대건 잔인한 피학을 ‘즐기건’, 누굴 납치하건 강간하건 돈을 훔치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무전유죄 유전무죄다. 힘 있는 놈은 늘 죄가 없다. 허나 이 세상에 강자가 그렇게 많이 존재하나? 강자는 소수고 약자는 다수다. 마치 육식동물은 수가 많지 않고 초식동물은 그 수가 어마어마하고 번식력도 좋듯이. 물론 그런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지만 먹히기 위한 존재는 아니지 않는가. 그 존재가 절대 강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듯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남성과 여성을 두고 봤을 때 여성은 당연히 남성에게 약자인 존재다. 일단 육체적인 힘power 의 차이가 너무 크다. 남성이 힘으로 여성을 제압하기란 너무나 간단하다. 그런 면에 있어서 나는 약자다. 내가 약자의 존재로 있을 때의 사드는 갑자기 잔혹해진다. ‘자연’처럼 동정이 없고 용서라는 게 없다. 물론 소설의 내용을 100% 받아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수업 시간에 어느 분은 ‘사드가 어느 의미에서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라고 주장했으나 나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 우선 그가 살았던 프랑스혁명 전후 시기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 봤을 때, 사드 역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하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그가 주장하고 있는 여성의 성적 해방을 이루어야 하는 목적은 결국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인데 이게 어떻게 페미니즘으로 이어질 수 있으랴.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드는 지극히 이기적-즉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사고를 했고 글을 썼다. 『돈 많은, 귀족의, 남자』의 주장인 것이다. 물론 임신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결혼을 반대한다는 결론적인 주장은 급진적 (생태적) 페미니즘과 맥을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의도는 정 반대이다.
쾌락을 추구한다는 데에는 입장을 같이하고 있는 사드와 마조흐. 하지만 사드가 말하는 (그가 칭한 것은 아닌 명칭이지만) 사디즘은 파괴적이고 대단히 일방적인 쾌락이다. 이에 비해 마조흐가 말하는 마조히즘은 계약적이고 상호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쾌락인 것이다. 하지만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극과 극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사디즘에서도 피학자와 가학자 모두가 즐길 수 없고 마조히즘에서도 역시 피학자와 가학자 둘 다가 즐기진 않는다. (모피.. 안에서의 그녀는 단지 그의 취향에 맞춰주었을 뿐, 실재로 그녀 스스로가 피학자가 되진 않았다.)
또 『모피…』에서의 마조흐의 태도는 상당히 어중간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피학에서 오는 쾌락이란 육체적인 것인지 정신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작품 안에서는 키스와 포옹 이상의 성적 행위의 묘사는 전혀 없다. 그는 ‘지배당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낄 뿐 육체적 ‘고통’에서 쾌락을 느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마지막 즈음해서 그리스인에게 채찍으로 얻어맞을 때 역시 ‘폭력’ 그 자체에서 쾌락을 느꼈다 라기 보다는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까지 몰고 간 그 여인의 차가움과 ‘그 상황’에서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이 마조히즘이 계약 하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이나, 그 계약을 제시했던 스스로가 나중엔 그 계약을 끊으려고 했고 노예이길 거부했다. 나중에는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느낀다. (내 생각이 너무 극단적일 지는 모르나) 그런 것이 ‘성향’이라고 불릴 만한 것인가? 그는 다른 모피를 입은 여성을 만나면 다시 그녀에게 복종할까? 소설 초반에 여성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하녀를 막 대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 봤을 때 마조흐가 주장하는 진정한 「피학적 쾌락」이 무엇인지 헷갈릴 따름이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꼭 누군가가 모루가 되고 누군가가 망치가 되어야 한다면, 그 관계는 마조흐가 말하는 것처럼 ‘계약’과 ‘합의’하에서 이루어져한다. 그렇기에 나의 입장에서 사드의 폭력은 상당히 불쾌한 것이다. 합의와 계약이 아닌 약육강식의 힘에 논리에 의한 일방적인 욕구 충족은 폭력 그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쾌락추구의 끝은 무엇인가? 더 큰 쾌락과 자극의 추구이다. 그 이상의 쾌락이 없을 땐? 그땐 이제 죽는 수 밖 에 없는 거다.
이 다섯 가지의 작품을 통해 내가 또 하나 의문을 품은 것은 「왜 본능을 추구한 인간은 결국 파멸에 이르는 것인가.」이다.
감각의 제국에서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와 쾌락만을 추구하다 결국 그 남자를 제 손으로 죽여 버린다. 그리고 소중하다는 듯이 그의 성기를 잘라 손안에 품는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건 그 남자였던 걸까, 그 남자가 주었던 쾌락이었던 걸까? 그녀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선 누구나 좋아했던 여자는 아니다. 다른 남자와도 잠자리를 가지며 돈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는, 그와의 평범한 성교에 무감각해져 결국 SM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그저 더 자극적인 것을 찾기 위해 그의 목을 졸랐던 것인가? 그녀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그가 죽었음에도 광분하거나 울부짖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무엇을 바랬던 걸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지속적인 쾌락? 아니면 소유? 그렇게도 쾌락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두려웠을까? 쾌락이 끝나면 그 남자와의 관계도 끝나는 것인가? 인간은 실로 ‘몸 뿐’인 존재인가?
끝까지 완독할 수 없었기에 「읽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허나 이것으로 내가 아직 ‘미친년’수준까진 가지 않았다는 게 증명이 된) 소돔 120일에서도 그렇게까지 쾌락을 추구하지만, 그 넷 중 누구하나 즐겁게 사는 사람이 없다. 모두들 모든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그 이상의 것을 찾기 위해 기묘한 행위에 집착한다. 남의 변을 먹거나 차마 읽을 수조차 없는 잔혹한 짓을 하거나. 그들은 ‘즐기고’는 있지만 ‘즐거워 하’지는 않는다. 극단적인 쾌락마저 익숙해 져 무감각해진 상태에서 무엇이 즐겁고 무엇이 재미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완전한 단계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사드야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이 세계는 너무나도 깊고 강하게 “기독교적 세계관”에 젖어있다. 그들의 말이 마치 진리인 양 믿어지고 있으며 그것은 사회적 통념이자 이념, 윤리, 도덕으로 작용하며 세상의 잣대가 되고 있다. 이미 부정할 수도 없을 만큼 깊숙한 부분까지 말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이고 정의라면 어째서 많은 악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인간생활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획일적으로 어떤 것을 강요하며 폭력으로서의 종교는 그것을 믿지 않은 사람-혹은 부정하고 거스르는 사람-을 악 혹은 치유해야 할 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것을 ‘틀렸다wrong', '존재해서는 안된다’, ‘교화될 수 있다’며 억지로 자신들의 틀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킨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폭력적 기재에 대해 사람들은 아무런 거부감을 갖지 않은 채 내면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런 내면화가 점점 인간의 본성과는 위배되는 규범적 도덕과 윤리를 만들며 강화시켜간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해 보려는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 차이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점차적으로 사회적 차별의 대상을 늘려가며 늘 우위에 있으려, 도덕적인 존재로 있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의 주장은 현재에까지 통용될 수 있는 비판서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비판하고 뒤집어엎고 있는 그, 정말 대단하다. 사드나 쥬네가 인간의 내면을 기존의 것과는 다른 식으로 비틀어 보고 다르게 해석시킨다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그 역시 -비록 너무나 극단적이기는 하나-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나도 사드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드처럼 될 수 없는 이유, 사드같이 완전한 자연을 추구하기에는 나 역시도 너무나 많은 윤리와 법과 통념적 도덕을 내면화 시켰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것들이 촘촘한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내 속의 악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이면 사드와 같이 자신의 위선을 걷어내고 내 욕망을 표출하며 자연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 언제쯤일까?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 나의 욕망과 악을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사드여, 나를 해방시켜주오. 으제니를 교육시키듯, 나를 교화시키고 나를 일깨워주고 그것을 행동에 옮길 용기를 주오!
출처 :http://mikimoto.pe.kr/tatter/?pag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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